우리가 딛고 서있는 흙은 가장 중요한 생태적 자산이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대한 현대인들의 인식은 그리 높지 못하다. 오염되었을 경우 피해가 공기나 물처럼 즉각적이지 않기도 하거니와 도시화에 따라 사람들이 먹거리를 다른 공산품과 같은 유통구조로 구매하게 된 것도 흙에 대한 관심을 소홀하게 하는 이유이다.
흙, 즉 토양은 우리의 모든 먹거리의 시작점이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태시스템의 기둥이다. 식물을 길러내고 물을 정화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가치 이외에도 최근 토양이 가지고 있는 추가적인 생태적 가치가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와 기후변동성 증가, 이에 따라 예상되는 농업피해를 극복하는데 토양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토양자체가 처해 있는 위기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전세계 곳곳의 농경지는 오랜 기간 수탈적인 작물생산과 화학비료와 농약 살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아니더라도 생태기능의 한계에 봉착한 농경지가 늘어가고 있다. 자연적인 상태의 토양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미생물과 지상의 초목, 동물들이 생태적으로 서로 연결고리를 유지하도록 함으로서 지구의 거대한 탄소순환(Carbon Cycle)이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 식물의 광합성에 의해 대기중의 이산화탄소가 유기물로 전환되고 이중 일부분은 토양 속에 남아 부식토를 이룸으로써 토양이 건강성과 생산성을 유지하게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인간의 작물생산은 토양 중 유기물의 감축을 야기했다. 현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중 30% 이상이 이처럼 본래 토양에 있던 유기물이 유출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군다나 2차대전 이후 대대적으로 사용된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해 토양 자체의 생명력은 더욱 더 약해져 가고 있다. 미생물 활동을 억제하고 토양 표피의 유실을 초래함으로써 토양 속 유기물 손실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언젠가는 고갈될 수 밖에 없는 화석에너지로부터 생산된다. 에너지사용에 따른 환경문제뿐 아니라 토양의 생태적 기능저하에 의한 피해가 적지 않다. 화석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존되어 있는 관행농법은 지속가능 사회로 나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어 왔다.
토양은 대기보다 세배나 많은 탄소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토양과 대기의 탄소 밸런스가 중요하다. 토양이 생태적인 건강성을 회복하여 유기물 축적이 촉진된다면 그만큼 대기 중 탄소는 저감된다. 토양속의 유기물은 물을 포집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따라 빈번해지는 폭우와 가뭄에 대한 내성효과 또한 높다. 따라서 토양을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과도한 화학물질 사용을 배제하고 토양의 생태적 활성을 높여 나간다면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 해결과 함께 에너지사용량 감축, 식량의 증산과 같은 인류의 현안해결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유엔에서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2015년을 “세계 흙의 해 (International Year of Soil)”로 지정한바 있다. 아울러 매년 12월 5일을 “세계 흙의 날 (World Soil Day)”로 정했다. 이를 통해 유엔은 위험에 처한 흙이 미래세대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전 세계 각국이 흙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수탈적인 관행농법(Conventional Farming)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이 지구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화학비료나 농약에 의존하지 않는 유기농업,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땅을 파해치지 않는 무경운(無耕耘, No-tillage)농법, 가축사육과 작물재배를 조합하는 형태의 생태순환서비스 시스템의 구축 등의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농부들이 ‘땅심을 돋운다’라고 하는 것은 흙속에 유기물을 보충해 준다는 것이다. 밭갈이를 하고 농작물을 심는 것은 수 많은 세월동안 땅 속에 축적되었던 유기물을 고갈시키는 행위이다. 화학비료는 일회성인데다 대부분 씻겨 나가기 때문에 축적되지 않는다. 오히려 땅속의 미생물 활동을 방해하고 땅을 굳게 만든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퇴비와 같은 자연적인 유기물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땅심’이 유지되도록, 지속가능한 농업생산이 가능하도록 유기물의 순환체계를 형성해 주어야 한다. 이는 대기중의 이산화탄소(CO2)를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생물체(Biomass)로 전환하고 생물체의 생명이 끝난 후 퇴비화 과정을 거쳐 땅속에 묻는 행위이다. 농업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유력한 해법이 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동안 관행농법에서 벗어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이루어져 왔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생산자와 소비자가 늘었고 정부의 지원정책도 있었으나 전체 경지면적 중 유기농경지의 비율이 아직 1%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마저도 2009년을 정점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EU국가들이 평균 5%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산림녹화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 또한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인구에 비해 경지의 절대면적이 부족하고 토질 또한 척박하다. 흙이 주는 기회요인은 제한적인데 반해 위험요소는 무척 크다. 그런 만큼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흙을 식량생산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미래의 화석연료 고갈과 식량자립도 향상, 수자원 확보, 그리고 환경개선 문제 까지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도시의 유휴인력, 특히 은퇴를 시작하는 베이비붐세대가 ‘땅심을 돋우는’일에 투입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필요하다. 흙에서 친환경적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은 100세 시대에 가장 적당하고 의미있는 노후 일거리가 될 것이다 건강한 흙이 창출할 수 있는 다각적인 부가가치에 주목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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