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지구의 역사에서 현재의 기후조건이 만들어진 것은 대략 1만2천년 전이다. 온난기와 빙하기 (氷河期, ice age)를 반복하다 마지막 빙하기인 플라이스토세(Pliocene, 또는 홍적세) 끝에 찾아온 지금의 시기를 전문가들은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른다. 홀로세에 이르러 인류는 본격적인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가 홀로세와 함께 열렸고 곧바로 농경이 시작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지구의 나이를 45억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니 지난 1만여년의 시간은 정말 찰나에 불과하다. 지구과학의 관점에서는 홀로세가 이제 방금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The Economist, 2011)
2016년 8월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는 국제지질학총회(International Geological Congress) 소속의 과학자들이 모여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의 시작을 선포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인류의 문명의 영향으로 인해 지구가 새로운 시기로 구분되기에 충분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에 광범위하게 축적된 플라스틱과 새로운 금속물질, 콘크리트, 인간활동에 의한 기후변화는 새로운 지구의 특징이다. 그리고 새로운 연대의 명칭은 인류세(Anthropocene)으로 제안되었다.
인류의 시작은 홀로세가 시작되기 훨씬 전이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Homosapience)는 최소한 십만년 전에 출현하여 지구에 족적을 남겨왔다. 불의 발견이나 농업혁명 등을 통해 인류는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종이 되었다. 급기야 산업혁명 이후 인류 문명이 지구상에서 독주체제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지질시대를 열 만큼 자연에 인위적인 변화를 야기했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인류는 화석에너지를 사용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지구에 축적된 화석에너지, 즉 석탄과 석유를 꺼내쓰기 시작했는데 채 1백여년이 흐르지 않아서 고갈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수십억년 지구가 축적한 자원을 1백여년 만에 써 없앤 셈인데, 그 소비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산업화 이전에는 사람과 가축의 힘을 이용했고 풍력이나 수력과 같은 자연의 힘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 모두가 현재의 구분으로는 재생(Renewable)에너지인 반면 화석에너지는 꺼내 쓰되 채워지지 않는, 지속가능(Sustainable)하지 않는 에너지이다.
화석에너지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잉여의 에너지는 생산의 증가와 이에 따른 인구의 증가를 야기했고 증가된 인구는 다시 에너지 소비를 촉진하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과정을 통해 많은 환경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산업화 이전에 20억명이 되지 않았던 인구가 지금은 70억명을 넘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도 산업화 이전 280ppm 수준에서 지금은 400ppm을 초과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미 지구가 어느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비만증 판정을 받은 환자의 몸무게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지구의 변화는 핵실험에 의한 방사능물질의 확산, 플라스틱 공해, 석탄연소의 그을음 축적, 콘크리트의 축적, 비료사용에 의한 질소와 인(燐)의 축적, 심지어 폭발적인 닭뼈의 증가 등이다. 모두가 인간활동의 결과물들이고 생물종들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들이다. 인류세(人類世)로 번역되는 Anthropocene은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폴크루첸(Paul Crutzen)과 그의 동료인 유진스토머(Eugene Stoermer)에 의해 2000년도에 처음 제안되었다. Anthropo-는 그리스어 anthropos에서 파생된 것으로 ‘사람과 관련한’의 의미이고 -cene 역시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것으로 당초 ‘새로운’의 뜻으로 지질시대 구분에 쓰였던 것이 어느덧 일반 명사화 된 것이다.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인류세에 대한 위원회(Working Group on the Anthropocene)에서 35명의 위원 중 30명이 인류세 명명에 대해 찬성하였다 한다. 앞으로 수년간의 추가논의를 거쳐 국제지질학총회에서 최종 결정을 하면 우리는 지구의 새로운 지질학적 역사의 전환을 목격하게 된다. 남은 논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Golden Spike’를 선정하는 것이다. 즉, 새로운 시기의 기준과 시작점을 정하는 것이다. 원자탄 실험때 대기중에 퍼진 방사능물질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지만 대기중의 온실가스 증가나 발전소로부터의 미연소 탄소를 하자는 등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어떤 기준을 채택하든지 그 기준점은 1950년대 근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류문명의 질주는 그 토양이 되어 준 홀로세를 지구연대 변화로는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에 마감하게 하고 새로운 시기를 열어버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종 중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종(種)에 의해,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로 구분지어질 만큼 지구환경이 변화해 버렸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물종들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결코 자랑스럽지도, 반갑지도 않은 ‘인류세’라는 역사적인 지질학적 한 시기의 시작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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