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0일 화요일

흙의 생태적 가치

우리가 딛고 서있는 흙은 가장 중요한 생태적 자산이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대한 현대인들의 인식은 그리 높지 못하다. 오염되었을 경우 피해가 공기나 물처럼 즉각적이지 않기도 하거니와 도시화에 따라 사람들이 먹거리를 다른 공산품과 같은 유통구조로 구매하게 된 것도 흙에 대한 관심을 소홀하게 하는 이유이다.
 흙, 즉 토양은  우리의 모든 먹거리의 시작점이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태시스템의 기둥이다. 식물을 길러내고 물을 정화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가치 이외에도 최근 토양이 가지고 있는 추가적인 생태적 가치가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와 기후변동성 증가, 이에 따라 예상되는 농업피해를 극복하는데 토양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토양자체가 처해 있는 위기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전세계 곳곳의 농경지는 오랜 기간 수탈적인 작물생산과 화학비료와 농약 살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아니더라도 생태기능의 한계에 봉착한 농경지가 늘어가고 있다. 자연적인 상태의 토양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미생물과 지상의 초목, 동물들이 생태적으로 서로 연결고리를 유지하도록 함으로서 지구의 거대한 탄소순환(Carbon Cycle)이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 식물의 광합성에 의해 대기중의 이산화탄소가 유기물로 전환되고 이중 일부분은 토양 속에 남아 부식토를 이룸으로써 토양이 건강성과 생산성을 유지하게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인간의 작물생산은 토양 중 유기물의 감축을 야기했다. 현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중 30% 이상이 이처럼 본래 토양에 있던 유기물이 유출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군다나 2차대전 이후 대대적으로 사용된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해 토양 자체의 생명력은 더욱 더 약해져 가고 있다. 미생물 활동을 억제하고 토양 표피의 유실을 초래함으로써 토양 속 유기물 손실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언젠가는 고갈될 수 밖에 없는 화석에너지로부터 생산된다. 에너지사용에 따른 환경문제뿐 아니라 토양의 생태적 기능저하에 의한 피해가 적지 않다. 화석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존되어 있는 관행농법은 지속가능 사회로 나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어 왔다.
토양은 대기보다 세배나 많은 탄소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토양과 대기의 탄소 밸런스가 중요하다. 토양이 생태적인 건강성을 회복하여 유기물 축적이 촉진된다면 그만큼 대기 중 탄소는 저감된다. 토양속의 유기물은 물을 포집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따라 빈번해지는 폭우와 가뭄에 대한 내성효과 또한 높다. 따라서 토양을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과도한 화학물질 사용을 배제하고 토양의 생태적 활성을 높여 나간다면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 해결과 함께 에너지사용량 감축, 식량의 증산과 같은 인류의 현안해결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유엔에서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2015년을 “세계 흙의 해 (International Year of Soil)”로 지정한바 있다. 아울러 매년 12월 5일을 “세계 흙의 날 (World Soil Day)”로 정했다. 이를 통해 유엔은 위험에 처한 흙이 미래세대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전 세계 각국이 흙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수탈적인 관행농법(Conventional Farming)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이 지구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화학비료나 농약에 의존하지 않는 유기농업,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땅을 파해치지 않는 무경운(無耕耘, No-tillage)농법, 가축사육과 작물재배를 조합하는 형태의 생태순환서비스 시스템의 구축 등의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농부들이 ‘땅심을 돋운다’라고 하는 것은 흙속에 유기물을 보충해 준다는 것이다. 밭갈이를 하고 농작물을 심는 것은 수 많은 세월동안 땅 속에 축적되었던 유기물을 고갈시키는 행위이다. 화학비료는 일회성인데다 대부분 씻겨 나가기 때문에 축적되지 않는다. 오히려 땅속의 미생물 활동을 방해하고 땅을 굳게 만든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퇴비와 같은 자연적인 유기물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땅심’이 유지되도록, 지속가능한 농업생산이 가능하도록 유기물의 순환체계를 형성해 주어야 한다. 이는 대기중의 이산화탄소(CO2)를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생물체(Biomass)로 전환하고 생물체의 생명이 끝난 후 퇴비화 과정을 거쳐 땅속에 묻는 행위이다. 농업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유력한 해법이 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동안 관행농법에서 벗어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이루어져 왔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생산자와 소비자가 늘었고 정부의 지원정책도 있었으나 전체 경지면적 중 유기농경지의 비율이 아직 1%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마저도 2009년을 정점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EU국가들이 평균 5%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산림녹화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 또한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인구에 비해 경지의 절대면적이 부족하고 토질 또한 척박하다. 흙이 주는 기회요인은 제한적인데 반해 위험요소는 무척 크다. 그런 만큼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흙을 식량생산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미래의 화석연료 고갈과 식량자립도 향상, 수자원 확보, 그리고 환경개선 문제 까지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도시의 유휴인력, 특히 은퇴를 시작하는 베이비붐세대가 ‘땅심을 돋우는’일에 투입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필요하다. 흙에서 친환경적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은 100세 시대에 가장 적당하고 의미있는 노후 일거리가 될 것이다  건강한 흙이 창출할 수 있는 다각적인 부가가치에 주목하여야 한다.

'환경'의 의미

‘환경(環境)’ 만큼 다양하게 사용되는 단어도 드물다. 정치환경, 경제환경, 영업환경 등 다양한 주제와 결합하여 그 주변 상황을 지칭한다. 그렇지만 ‘환경’이라는 단어 단독으로는 우리 주변의 물리적 자연 상황을 말한다.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은 환경을 “1. 생물에게 직접ㆍ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2.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어로는 ‘Environment’에 대응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조건이나 상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흔히 ‘환경관리’라고 할때 그 대상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
한자권의 나라들, 일본과 중국, 베트남에서도 Environment의 의미로 같은 한자 ‘環境’을 쓴다. 어느나라에서 먼저 이 단어를 사용했을까. 아무래도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그래서 환경문제가 먼저 대두된 일본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1963년에 공해방지법을 제정했다가 1977년에 환경보전법으로 대체하면서 ‘환경’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공해(公害)’역시 일본에서 먼저 사용하던 용어이다. 1949년에 도쿄시에서 공해방지조례가 만들어지면서 법체계에서 ‘공해’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이후 1972년에 자연환경보전법이 제정되면서 ‘환경’이라는 단어가 현재의 의미로 공식화 되었다. 환경이라는 단어가 그 전부터 한자권에 존재했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지만 이를 일본에서부터 영어권의 Environment의 개념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환경문제가 대두된 것 자체가 1950년 이후이다. 환경오염은 산업화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어서 제 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에 속도가 붙은 1950년대부터 환경문제가 구체적으로 제기되었고 영어 ‘Environment’ 역시 1950년대 이후에 현재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환경’의 ‘환(環)’은 고리 환 또는 둥글 환으로 고리모양의 옥(玉)을 뜻한다. ‘경(境)’은 지경 경으로 경계(境界)의 뜻이다. 따라서 환경은 어떤것의 주변 경계를 의미한다. 영어 Environment도 유사하다. ‘en’은 라틴어로 ‘in’의 의미이고, ‘viron’은 ‘circle’의 의미이다. 따라서 environment는 무엇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뜻한다. 생태학이라고 번역되는 Ecology도 마찬가지이다. ‘eco’라는 ‘사는 곳’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oiko’와 학문을 의미하는 ‘logos’의 합성어이다. ecology 역시 현재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eco’의 어두를 가진 용어로 경제를 뜻하는 ‘economy’가 있다. 이는 사는 곳을 관리한다는 뜻으로 ‘-nomy’는 ‘관리하다’라는 그리스어 ‘nomos’로 부터 파생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친환경을 의미하는 단어로 ‘에코(eco)’가 많이 쓰이고 있다. 환경관련 회사나 친환경적인 제품의 이름에 ‘에코’가 자주 사용된다. 환경전문가들은 에코를 ecology와 economy의 공통분모로 인식한다. ‘환경(environment)’은 오염을 방지하고 보호하는 것으로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비용이 집행되어야 하는 개념이라면 ‘에코(eco)’는 자연보호와 함께 경제적 이득도 추구하는, 소위 생태효율성을 높이는 개념으로 본다.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 의무적인 환경관리에서 진일보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인류가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연보호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역시 ‘에코’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녹색(Green)’ 역시 의미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리해 보면, 2차 세계대전 후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심각한 오염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1950년대에 ‘공해방지(Pollution Prevention)’ 개념이 등장하였고, 1970년대에는 단순히 오염물질을 줄이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주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관리(Environmental Management)’가 등장했다. 1992년 리우(Rio) 환경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전 지구적으로 대두된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생태효율성을 높이는, 개발과 환경보호를 병립시키자는 의미의 ‘에코’, ‘지속가능개발’, ‘녹색성장’과 같은 용어가 등장했다.
시기별 상황에 따라 명칭과 개념이 달라지고 있지만 현재는 ‘환경’이 이 분야를 대표하는 용어이다. 우리나라 관련부처도 환경부이고 환경정책기본법을 기본법으로 하여 “환경”법 체계가 작동되고 있다. 영어권이나 한자권 모두 ‘environment’, ‘環境’이라는 단어가 현재 공적인 명칭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개념들도 아직 ‘환경’이라는 범주에서 해석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환경의 개념이 무척 넓어졌다. 오염물질을 측정하고 제거하는 것부터 환경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제품의 친환경성을 향상하는 것, 에코효율성을 평가하고 최적화 하는 것, 인류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활동 등등,..
이러한 개념 확장을 우리 사회의 가버넌스가 얼마만큼 수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환경의 다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를 주창하는 학자들의 목소리는 공허하다. 구체적인 방안제시가 부족하다. 기업들 역시 이런 개념을 유행처럼 여기고 있다. 진지한 환경보호 노력보다는 홍보나 마케팅의 수단으로 차용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녹색성장’이라는 구호하에 4대강 사업과 같은, 오히려 반 환경적인 사업을 밀어부친 적도 있다. 우리나라 60여개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환경공학과에서는 오염물질 제거와 같은 전통적인 환경관리 기법이 아직 커리큘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현상을 변화할 것이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 가버넌스도 이에 맞춰 변화가 불가피하다.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환경 이슈가 우리나라에 큰 압력으로 작용하면 기존 체제로 대응해 나가는데 한계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빠르면 다음 정부에서  환경부를 대신하여 ‘지속가능개발부’, 또는 ‘녹색성장부’가 들어설지도 모를일이다.

인류세(Anthropocene)

긴긴 지구의 역사에서 현재의 기후조건이 만들어진 것은 대략 1만2천년 전이다. 온난기와 빙하기 (氷河期, ice age)를 반복하다 마지막 빙하기인 플라이스토세(Pliocene, 또는 홍적세) 끝에 찾아온 지금의 시기를 전문가들은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른다. 홀로세에 이르러 인류는 본격적인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가 홀로세와 함께 열렸고 곧바로 농경이 시작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지구의 나이를 45억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니 지난 1만여년의 시간은 정말 찰나에 불과하다. 지구과학의 관점에서는 홀로세가 이제 방금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The Economist, 2011)
2016년 8월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는 국제지질학총회(International Geological Congress) 소속의 과학자들이 모여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의 시작을 선포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인류의 문명의 영향으로 인해 지구가 새로운 시기로 구분되기에 충분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에 광범위하게 축적된 플라스틱과 새로운 금속물질, 콘크리트, 인간활동에 의한 기후변화는 새로운 지구의 특징이다.  그리고 새로운 연대의 명칭은 인류세(Anthropocene)으로 제안되었다.
인류의 시작은 홀로세가 시작되기 훨씬 전이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Homosapience)는 최소한 십만년 전에 출현하여 지구에 족적을 남겨왔다. 불의 발견이나 농업혁명 등을 통해 인류는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종이 되었다. 급기야 산업혁명 이후 인류 문명이 지구상에서 독주체제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지질시대를 열 만큼 자연에 인위적인 변화를 야기했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인류는 화석에너지를 사용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지구에 축적된 화석에너지, 즉 석탄과 석유를 꺼내쓰기 시작했는데 채 1백여년이 흐르지 않아서 고갈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수십억년 지구가 축적한 자원을 1백여년 만에 써 없앤 셈인데, 그 소비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산업화 이전에는 사람과 가축의 힘을 이용했고 풍력이나 수력과 같은 자연의 힘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 모두가 현재의 구분으로는 재생(Renewable)에너지인 반면 화석에너지는 꺼내 쓰되 채워지지 않는, 지속가능(Sustainable)하지 않는 에너지이다.
화석에너지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잉여의 에너지는 생산의 증가와 이에 따른 인구의 증가를 야기했고 증가된 인구는 다시 에너지 소비를 촉진하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과정을 통해 많은 환경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산업화 이전에 20억명이 되지 않았던 인구가 지금은 70억명을 넘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도 산업화 이전 280ppm 수준에서 지금은 400ppm을 초과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미 지구가 어느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비만증 판정을 받은 환자의 몸무게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지구의 변화는 핵실험에 의한 방사능물질의 확산, 플라스틱 공해, 석탄연소의 그을음 축적, 콘크리트의 축적, 비료사용에 의한 질소와 인(燐)의 축적, 심지어 폭발적인 닭뼈의 증가 등이다. 모두가 인간활동의 결과물들이고 생물종들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들이다. 인류세(人類世)로 번역되는 Anthropocene은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폴크루첸(Paul Crutzen)과 그의 동료인 유진스토머(Eugene Stoermer)에 의해 2000년도에 처음 제안되었다. Anthropo-는 그리스어 anthropos에서 파생된 것으로 ‘사람과 관련한’의 의미이고 -cene 역시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것으로 당초 ‘새로운’의 뜻으로 지질시대 구분에 쓰였던 것이 어느덧 일반 명사화 된 것이다.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인류세에 대한 위원회(Working Group on the Anthropocene)에서 35명의 위원 중 30명이 인류세 명명에 대해 찬성하였다 한다. 앞으로 수년간의 추가논의를 거쳐 국제지질학총회에서 최종 결정을 하면 우리는 지구의 새로운 지질학적 역사의 전환을 목격하게 된다. 남은 논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Golden Spike’를 선정하는 것이다.  즉, 새로운 시기의 기준과 시작점을 정하는 것이다. 원자탄 실험때 대기중에 퍼진 방사능물질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지만 대기중의 온실가스 증가나 발전소로부터의 미연소 탄소를 하자는 등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어떤 기준을 채택하든지 그 기준점은 1950년대 근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류문명의 질주는 그 토양이 되어 준 홀로세를 지구연대 변화로는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에 마감하게 하고 새로운 시기를 열어버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종 중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종(種)에 의해,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로 구분지어질 만큼 지구환경이 변화해 버렸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물종들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결코 자랑스럽지도, 반갑지도 않은 ‘인류세’라는 역사적인 지질학적 한 시기의 시작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